미식축구 슈퍼볼 경기에서 서로 볼을 뺏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

스포츠경기의 목적 3편

스포츠경기의 목적

이번 글에서는 스포츠경기의 목적을 재고해 보고자하며 총 3편중 3편이다. 스포츠에는 승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아곤적 요소와 탁월성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아레테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데, 현재 스포츠에서는 아레테보다 아곤적 요소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아곤적 요소는 스포츠에 긴장과 재미를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아레테는 아곤을 포괄하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경기에서 더욱 중요시되어야 한다.

 

승리 추구와 탁월성 추구

스포츠에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곤적 요소와 자신의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레테적 요소가 모두 내재되어 있다.

운동선수들은 마땅히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아곤적 요소보다 아레테적 요소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즉, 현대사회에서 운동선수나 팬들은 스포츠적 사건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아레테보다는 아곤을 선호한다. 스포츠의 병폐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승리지상주의’가 이러한 현실을 잘 대변해준다.

이하에서는 스포츠에서 승리 추구(아곤적 요소)보다 탁월성 추구(아레테적 요소)를 중시해야 하는 예상이유를 굼브레히트(Gumbrecht)의 논의에 기대어 설명하겠다.

첫째, 탁월성 추구는 항상 경쟁과 승리 추구를 포함하고 있지만 경쟁과 승리 추구는 언제나 탁월성의 추구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아레테가 아곤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스포츠에서는 아레테적 요소, 즉 탁월성 추구를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성과를 추구할 경우에 우리는 가상의 경쟁자를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 성과의 추구는 언제나 경쟁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스포츠에서 승리 추구보다 탁월성 추구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스포츠의 긍정적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만일 스포츠에서 탁월성 추구보다 승리 추구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다수의 스포츠비평가들이 병폐로 지적하고 있는 승리지상주의를 긍정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 또한 승리에 최상의 가치가 주어질 경우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체계의 무한경쟁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논의될 것이고, 선수와 팬들을 초조하게 만들어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기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선수와 팀, 구단은 자신 또는 자기 팀의 승리를 위해 승부조작, 도핑, 경쟁관계에 있는 선수나 팀에 대한 폭행 등도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탁월성 추구가 더욱 강조될 경우에 스포츠는 승리지상주의로 인해 형성된 모든 부정적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 승리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독일의 철학자 한스 렝크는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것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 할 ‘고유한 성과’라고 하였다.

스포츠에서 최고 성과의 추구는 규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규칙이 허용하지 않는 수단에 의지하여 달성한 성과는 스포츠적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 예컨대 금지된 수행 향상 약물에 의지하여 이룬 스포츠적 성과는 참된 의미에서의 스포츠적 성과가 아니다. 따라서 어떤 선수가 경기에서 우수한 성과를 올려 세계신기록으로 인정을 받거나 우승자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추후 그 선수의 도핑 사실이 적발될 경우 그 기록과 우승 결정은 취소된다. 그가 이룬 성과 스포츠적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포츠에서 아레테적 요소를 강조하는 자는 결코 의도적으로 규칙을 위반하거나 허용되지 않은 수단을 이용하여 성과를 올리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룬 성과는 결코 참된 의미에서의 스포츠적 성과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스포츠에서 아곤적 요소를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몇몇 학자들은 스포츠, 특히 청소년 스포츠에서 아곤적 요소를 제외시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과열 결쟁을 조장하는 아곤적 요소가 비교육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유소년스포츠에서 승리가 과도하게 강조됨에 따라 부모, 코치, 관중 그리고 청소년 스포츠선수 사이에서 과열 경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과열 양상은 이를 비판하는 폭넓은 담론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여러 단체와 전문가들이 나서서 어린이의 욕구와 관심을 강조하는 건강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결국에는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유소년스포츠에서 활동과 즐거움을 강조하고 경쟁성을 덜 강조하는 개혁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소위 뉴스포츠이다. 뉴스포츠는 기존의 스포츠와  달리 경쟁보다 협동과 활동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중요시한다. 뉴스포츠 종목에는 ‘참가자 모두가 큰 풍선 같은 공을 오랫동안 공중에 띄우는 게임’이나 ‘원반을 앞 또는 뒤로 던지면서 즐거워하는 게임’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스포츠 종목들은 대부분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결국 나타나자마자 사라졌다. 역설적이게도 원반던지기의 경우 ‘가장 멀리 원반던지기’라는 경쟁적인 스포츠로 바뀌었으며, 그 이후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스포츠에서 아곤적 요소가 배제될 수도 없고 배제되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아곤과 아레테는 대부분의 스포츠적 사건에 공존하는 속성이다. 아곤적 요소, 즉 경쟁심을 경기에 긴장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선수들은 승리하려는 강렬한 욕망으로 인해 경기에 몰입하고, 스포츠팬들 역시 승부로 인해 응원의 동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경쟁심이 과열되고 승리가 절대화될 경우에 ‘잔혹한 생존투쟁’을 ‘아름다운 자유 경쟁’ 으로 순화시켰던 제도화된 규칙이 무시될 우려가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에 스포츠는 폭력적 투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것이 아곤적 요소보다 아레테적 요소를 더욱 중시해야 하는 이유이다. 스포츠팬들도 단순히 승리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의 한계뿐만 아니라 인류의 한계에 도전하고, 이것을 넘어서려고 분투노력하는 선수들에게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참조 : 스포츠경기의 목적 1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