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기의 목적
이번 글에서는 스포츠경기의 목적을 재고해 보고자하며 총 3편중 2편이다. 스포츠에는 승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아곤적 요소와 탁월성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아레테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데, 현재 스포츠에서는 아레테보다 아곤적 요소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아곤적 요소는 스포츠에 긴장과 재미를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아레테는 아곤을 포괄하며 스포츠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경기에서 더욱 중요시되어야 한다.
아곤과 아라테의 차이
아레테의 의미
아레테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자질을 의미하며, 흔히 ‘덕’으로 번역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전쟁의 신 아레스(Ares: 라틴어로는 Mars로 표기함)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원래 전쟁과 관련된 단어였다. 고대 그리스는 여러 도시국가로 분할되어 있었으며, 각 도시국가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항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그런 이유에서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쟁이 일상화된 사회였다. 고대 올림픽경기도 계속되는 전쟁에 지친 그리스인들이 전시 상황을 잠시라도 멈춰보려는 의도에서 고안한 행사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전쟁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인간의 자질은 용기(andreia)이다. 따라서 아레테의 원래 의미는 전사의 용기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그 내용은 변화되었고 풍부해져갔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소피스트들은 아레테를 개인 문제의 처리에 있어서 능함, 특히 수사학적 능력으로 이해했다. 당시 그리스 시민이 가장 원했던 것은 입신출세였고,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수사학적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토론이 활성화되었던 당시 그리스사회에서 입신출세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논쟁을 벌여 이길 수 있어야 했고, 연설을 통해 대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당시의 아레테는 논리적으로 언변을 펼치는 수사학적 능력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레테는 앎(episteme)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소피스트들의 아레테 이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훌륭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압도하는 말재간보다는 인간 고유의 기능(ergon)을 아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본질적인 구실이나 기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말이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이다.
아레테는 이후 그리스 도시국가의 남자 시민이 지녀야 할 자질로 굳어졌다. 이들은 도시국가의 공공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격을 부여받았고, 가장으로서 아내, 자녀, 노예에게 질서를 부여했는데, 이를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아레테였다. 여기서 아레테란 오래전부터 전수되어온 윤리의식(ethos)을 뜻했으며, 이러한 윤리의식을 갖춘 자는 도시국가의 유능한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레테는 처음부터 윤리적인 의미를 함축한 개념은 아니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면 아레테가 단지 인간의 윤리적 자질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의 다른 능력들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역어는 아레테의 본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다. 이미 여러 학자들이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네틀십(Nettleship)은 아레테가 도덕적 자질이 아니라 행위자로 하여금 특수한 일을 잘하도록 하게 하는 특성이라고 하였으며, 필드(Field)는 아레테가 일반적인 의미로 도덕적 자질이 아니라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특정한 종류의 능력이나 실력을 가리킨다고 하였고, 예거 (Jaeger)는 아레테의 형용사에 해당하는 아가토스(Agathos)가 ‘윤리적인’이라는 제한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탁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알아보았듯이 그리스어 아레테는 대개 덕, 훌륭한 상태, 탁월성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아레테는 사물의 용도에 따라 그리고 사람들의 직분에 따라 상이한 내용을 갖는다. 칼에는 칼의 아레테가 있고, 펜에는 펜의 아레테가 있다. 또한 주부에게는 주부의 아레테가 있고, 노예에게는 노예의 아레테가 있다. 정치가에게는 정치가의 아레테가 있고, 기업인에게는 기업인의 아레테가 있듯이 스포츠인에게도 스포츠인의 아레테가 있다. 스포츠인의 아레테는 운동선수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개인 또는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아곤과 아레테의 차이
아곤의 목적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아곤은 언제나 경쟁관계에 있는 상태 또는 상대팀을 전제한다. 그런 의미에는 아곤은 상대적 개념이다. 아곤에서는 나의 성과가 아무리 우수해도 상대 또는 상대팀의 성과에 미치지 못하면 의미를 갖지 못하고, 나의 성과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도 상대 또는 상대팀의 성과보다 우위에 있다면 의미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최선을 다하거나 우수한 기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듯 아곤에서 행위의 의미는 그 과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아레테는 반드시 타자와의 비교를 전제하지 않는다. 운동선수는 다른 선수와의 경쟁에서 자신의 아레테를 과시할 수도 있지만, 타인과의 경쟁을 전제하지 않고도 충분하게 자신만의 아레테를 추구할 수 있고, 드러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두 개념의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아마추어 육상선수 로저 베니스터(Roger Bannister)의 예를 들어보겠다.
옥스퍼드대학 의대생이었던 베니스터는 1952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즉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 헬싱키올림픽 1,500미터 경기에 출전한다. 그러나 그는 이 경기에서 4위를 함으로써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육상 포기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는 결국 육상 포기 대신 1마일 4분 벽을 깨뜨리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그가 달리는 목적이 승리의 추구, 즉 아곤에서 인간의 한계에까지 밀고나가는 탁월성의 추구, 즉 아레테로 바뀐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리는 일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결과 1954년 5월 4일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 당시 그와 함께 달렸던 두 명의 선수는 그의 경쟁자가 아니라 그의 기록 달성을 돕기 위해 참여했던 페이스메이커들이었다.
베니스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곤과 아레테는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아레테의 능력 발휘는 탁월성의 추구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 상대와의 비교적 우위 추구, 즉 승리 추구를 통해 의미를 찾는 아곤의 능력 발휘와 차별화 된다. 스포츠는 이와 같은 아곤적 요소와 아레테적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으며, 시대 및 사회에 따라 그 강조점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참조 : 스포츠경기의 목적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