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윤리, 경기장에서 판결을 내리는 모습

스포츠 윤리 기초 개념

도덕, 윤리, 선의 개념 요약

가장 먼저 스포츠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가 되는 도덕, 윤리, 선에 대한 개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윤리’와 ‘도덕’은 별다른 구분없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학자들조차 그 구별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는 같은 뜻을 지닌 용어가 아니다.

윤리와 도덕은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윤리라는 용어가 개인의 특성(character)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데 비해 도덕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기대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또한 인간사회의 규범을 의미할 때는 ‘윤리’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윤리를 존중하는 개개인의 심성 또는 덕행을 가리킬 때는 ‘도덕’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도덕, 윤리, 선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도덕 :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공통적인 규범과 도리
• 윤리 : 집단 안에서의 조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지켜야할 도리
• 선 : 도구적 의미에서의 유용성을 나타냄

 

윤리의 개념

‘윤리’라고 하면 인간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었을 때 그 집단에서 조화롭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관습과 질서, 도리가 생겨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윤리는 집단 안에서의 조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또한 전문적 또는 학술적 의미에서 ‘윤리’라고 할 때는 도덕적인 판단이나 기준을 이론적으로 밝혀 체계화시키고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윤리학은 도리와 도덕을 왜 지켜야 하고, 규율과 규범의 타당성과 진리성에 대해 이론적으로 논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도덕의 개념

‘도(道)’는 자연의 법칙 혹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강조하는 말이고, ‘덕(德)’이란 것은 오류의 결점을 항상 소지하고 있는 인간의 선(善) 지향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도리를 지키고 행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로부터 얻어지는 것, ‘득’까지를 포함한다. 즉, 도(道)에 따른 덕(德)의 생활을 강조하는 말로서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공통적인 규범과 도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심성 또는 덕행을 가리키며, 행위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옳은 일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주관적인 격률을 의미한다. 도덕이란 용어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와 그것을 자각하여 실천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윤리라는 용어와 대략 같은 의미로 쓰이면서도 원리 그 자체보다 체득(體得)에 중점을 둔다는데서 윤리와 차이점이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윤리와 도덕이라는 용어는 근본적인 차이는 없지만, 애써 구별한다면 도덕은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행동관습의 기준인 반면 윤리는 특정 사회나 직업에서 지키는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도덕이 만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생활에서의 원리를 말한다면, 윤리는 만인의 보편성보다는 하나의 대상을 특수한 방향에서 관찰하여 평가하는 철학적인 사변성이 짙다. 예를 들면, 체육교사가 배우자 명의로 배우자와 함께 아무도 모르게 술집을 운영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직윤리 측면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윤리는 도덕을 개념화하여 체계화시킨 것이며, 도덕에 대한 비판적 연구라고도 인식된다. 이러한 의미의 구분은 도덕이 윤리보다 더 근본적이며 상위의 규범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윤리와 도덕은 적어도 실천에 있어 타율이 아닌 개인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며,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분 자체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선의 개념

윤리, 도덕과 더불어 스포츠윤리를 이해함에 있어 요구되는 필수적인 용어는 ‘선(善, the good)’이다.  ‘선’이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좋을 선’ 혹은 ‘착할 선’이다. 즉, ‘선’이라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악(evil)과 대비되는 ‘선’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때 이 말에는 ‘착하다’라는 도덕적인 합의가 있다. 예를 들어 가위가 잘 들면 우리는 가위가 좋다고 표현한다. 그 가위가 물건을 자르는 데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즉, 가위라는 도구가 물건을 자르는 목적을 잘 달성하면 그 가위는 ‘좋다’라고 표현된다. 따라서 ‘선’은 도구적 의미에서 유용성을 나타낸다. 또한 이 단어는 ‘나쁘다’는 것에 대비되는 ‘좋다’라는 의미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행위나 사람에 대하여 은연중에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즉, ‘선’에는 유용성, 유효성 혹은 이익 등이 있다는 의미뿐 만 아니라 ‘악함’과 구별되는 ‘선함’이라는 윤리적인 의미도 있다.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선은 주로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이때의 ‘선’은 도덕적인 성품이나 도덕적인 가치와 관련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선이라는 말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덕성(arete/virtue)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훌륭함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도덕적 선은 특정한 사람의 요구와 상관없이 그 자체의 본성이 어떤 기준이나 관심 혹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특성을 갖는다. 목적 그 자체로서 추구할 만한 선이 곧 도덕적 선이 되는 것이다. 이를 흔히 내재적 신(intrinsic good)이라고 부른다. 내재적 선이란 수단이나 도구로서 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치의 원천이자 토대가 되는 그런 선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버는 목적이 무엇인지 물을 때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상상해보자.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면 다시 왜 부자가 되려고 하는지를 물을 수 있다. 이렇게 반복되는 질문의 마지막 대답, 즉 그 자체가 목적인 궁극적인 내재적 선을 최고선(최고)이라고 한다.

윤리학은 최고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선을 삶의 목적인 행복(eudaimonia)이라고 하였다. 이를 목적론적 윤리학이라 부른다. 한편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인 정신적 쾌락(ataraxia)을 최고의 선이라고 보았다. 쾌락이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 혹은 이성적 상태라면 쾌락주의 윤리학은 윤리적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칸트는 도덕적 의무를 따르고 실천하는 선의지 만이 최고선이라고 주장하였다. 칸트의 윤리학을 의무론적 윤리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조 : 스포츠와 윤리의 관계